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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결말 후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4. 8. 16.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 완결 결말 포함 스포일러 후기 관람평 노무현

 

지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 가장 핫한 화제성으로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관람했습니다. 초반 1~4화까지 정말 대박이라 여겼던 드라마였는데요. 정치 드라마로 완성도는 높았지만, 드라마적인 몰입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좀 남았습니다.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려다 보니 큰 틀에서의 쾌감을 유발하는 전개보다는 핑퐁게임에 가까운 모습을 작품 내내 보여줘서 아쉬웠습니다.

 

더해서 작품을 보는 내내 약간 만화 <블리치>가 떠올랐습니다. <블리치>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만화 배틀 전개가 원툴입니다. 서로 사실 내가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숨기고 있었다는 내용이 계속 이어집니다. 보면 정수진이 공격하면 박동호가 사실 내가 다 알고 있었고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면서 반격하는 내용의 연속이라 후반부 가서는 박동호가 알아서 다 대책을 준비해 놨겠지... 하는 생각에 극적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잘 만든 정치 드라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좌우를 아우르는 정치 담론을 현실의 정치와 밀접하게 담아냈다는 점,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다는 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먼저 정치를 말하는 수위의 경우 역대급이었습니다. 태극기 부대의 등장은 물론이고 보통 작가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 운동권과 관련된 이야기도 노골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더해서 결말에서 박동호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바위에서 투신하는 장면은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켰습니다. 좌우 가리지 않고 모든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은 넣으면서 정치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정치 드라마를 완성했습니다. 만약 지상파였다면 이 정도 수위의 정치 담론을 펼치지 못했을 겁니다. OTT이기에 박경수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담아냈다고 봅니다.

 

배우들의 경우 설경구와 김희애의 만남이 우선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설경구의 연기에 대해 아쉬웠다는 평들도 있는데요. 이 작품이 시작부터 끝까지 높은 템포로 진행이 된다는 점에서 이 정도면 너무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잘 해냈다고 봅니다. 박동호가 자신의 손으로 권력을 무너뜨리고, 한번 권력을 청소하려다 실패하고, 자신이 권력을 잡고, 다시 청소하려다 위기를 겪는 과정이 단 12부작에 담겼습니다. 만약 미드였다면 8시즌을 할 이야기였다고 봅니다.

 

 

연기에 있어서 가장 좋았던 캐릭터는 김종구가 연기한 박창식입니다. 여의도 정치 9단 철새 정치인의 능글맞으면서 날카로운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봅니다. 예전에 이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욕창>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주연급으로 연기도 잘하는 배우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최근 <삼식이 삼촌="">에 이어 이번 <돌풍>까지 역할을 잘 소화해내서 주목을 받는 거 같아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돌풍>이라는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거의 허물과 유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에서는 반복되는 죽음들이 있습니다. 박동호와 정수진은 자신들의 정치적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장일준을 죽입니다. 이때 차이가 있다면 박동호는 뒷걸음치지 않기 위해, 정수진은 뒷걸음질 치는 자신을 막을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서입니다. 박동호는 장일준이 대한민국의 허물이 될 것이라 여기는 반면, 정수진은 그의 명성을 유물로 가지고자 합니다.

 

정치에 있어 후보가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명성을 얻는 이유,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미움을 받는 이유는 이 허물과 유물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시체를 팔아 명성을 얻고, 누군가는 시체 때문에 허물을 뒤집어 써야 합니다. 이런 정치의 허물과 유물은 아버지의 허물과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신한당 대표 조상천입니다. 그는 극우를 내세워 인기를 얻은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갈까봐 진짜 북에 있는 아버지와 이복동생을 죽입니다.

 

허물과 유물을 만드는 건 죽음이라고 봅니다. 정치권에서의 죽음은 개인사가 아닙니다. 진영논리로 확장이 됩니다. 장일준의 죽음은 그를 신격화 했고, 장일준 아들을 수사하려는 박동호를 악으로 규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위기에 처했던 정수진은 남편 한민호의 죽음을 통해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건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그의 시체를 팝니다. 그리고 박동호는 최악의 여론을 바꾸고 정수진을 무너뜨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정치는 생물입니다. 생물이기에 감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을 향한 동정의 감정을 유발하고, 죽은 사람을 신격화 합니다. 박동호는 이런 정치란 생물을 이해했기에 이를 이용해 수진을 끝내고자 했고, 수진도 이것을 알기에 위기를 극복합니다. 개인적으로 동호의 죽음 이후에 작품이 끝이 났다면 더 멋있었을 겁니다. 결국 두 사람을 덮고 있던 허물과 유물의 핵심인 죽음이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결말은 아쉬움이 큽니다. 박동호가 남긴 유물을 남겨진 사람들이 받아서 정수진을 끝장내는 구성을 했는데요. 이는 ‘돌풍’이라는 제목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동호와 수진의 가장 큰 차이라면 허물을 입고 유물을 받으려고 했는지의 여부라고 봅니다. 그래픽노블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면 혁명가는 세상을 바꾼 뒤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영웅이 정치를 하면 세상은 또 다른 독재에 빠질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동호는 자신이 영웅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남긴 ‘돌풍’을 사람들이 이어 받아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만약 동호가 장석을 포기했다면 목적은 더 쉽게 이룰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허나 기태의 죽음을 기억하고, 뒷걸음질치다 허물을 입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이것이 돌풍으로 이어지길 고대합니다.

 

반면 수진은 동호를 이기고자 자신에게 아픈 과거를 안겼던 공안검사 출신 조상천의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상운처럼 살기 싫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의 아버지 영익과 한편이 되기도 합니다. 수진은 유물을 얻기 위해서는 허물을 뒤집어 쓸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이 지점은 현 진보세력의 중추인 운동권의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자신들이 허물이 될 수 있어도, 과거의 자신들을 기억하며 유물을 끌어안고자 합니다.

 

때문에 수진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헌데 그 최후가 결국 정연과 만길의 관계 때문이라는 건 작품이 보여준 멋을 생각했을 때 허무했습니다. 특히 몇 번이나 정연에게 만길이 속는다는 점에서 사랑에 대한 집착이 파멸을 이끈다는 점에서 기존 이야기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허무를 느꼈습니다. 여기에 마지막 꽃병에 숨겨둔 카메라를 통한 생방송으로 수진을 무너뜨린다는 설정은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돌풍>은 진보도 비판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진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태극기 부대를 내세운 조상천을 상대 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는 점은 갱생의 가능성도 없는 논외로 봤다고 봅니다. 반면 수진이 교도소에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장면은 과거 그들이 품었던 결의와 정신을 잊고 살아가는 현재를 반성해야 한다는 쓴소리로 보입니다. 세력화해서 권력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과거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디즈니+가 <비밀의 숲="">의 이수연 작가와 손을 잡았을 때 기대했던 그림이 이런 그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OTT의 자유로운 표현력 안에서 작가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맥시멈으로 뽑아내길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돌풍>을 보면서 들었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